[반려인의 오후] 사랑의 방법 (2022)
동물에 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동물이 사람과 달리 본능만을 따르는 단순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 욕구와 함께 즐거움, 두려움 같은 몇 가지 감정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내면의 전부일 거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개나 고양이를 오래 키워본 사람은 안다. 이들이 성격에 따른 복잡한 감정선에 의해 행동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때로는 눈빛으로 거짓말도 할 줄 알고, 속거나 놀림을 받으면 분개하기도 하며, 토라졌다가 용서하는 등 자기 나름대로 감정을 극복하기도 한다.
우리 집에 사는 세 고양이 요다·모래·녹두는 몸에 물이 닿는 것을 싫어하는 평범한 고양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모래한테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내가 샤워할 때 욕실이 습기로 가득 차지 않도록 문을 조금 열어둘 때가 있는데, 모래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들어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샤워기 아래 선 내 발치로 다가와 물줄기를 함께 맞았다.
목욕이라면 질색하던 모래가, 이상하게도 내가 샤워만 하면 함께하겠다고 떼를 쓰는 고양이가 된 것이다. 너무 자주 목욕하는 게 안 좋을 것 같아서 가끔 내쫓아야 할 정도가 되었다. 자발적으로 샤워기 아래로 돌진하는 고양이라니. 샤워를 무슨 새로운 놀이로 여기게 되기라도 한 걸까 의아했다.
그런데 모래의 행동을 한동안 관찰한 뒤 진짜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욕실은 물을 두려워하는 요다와 녹두가 얼씬도 하지 않는, 특히나 샤워기가 틀어져 있는 동안은 내 손길을 온전히 독점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모래의 조그만 뇌 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래가 원한 것은 샤워가 아니었다. 나의 애정과 관심을 독차지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었다.
문득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죽고 없는 내 작은 개. 30년 전 일이다. 아빠와 나는 개와 셋이서 새벽 낚시를 다닌 적이 있다. 그 녀석은 물을 무서워했지만 낚시를 가자고 하면 언제든 따라나섰다. 강기슭에 도착하면 뭍에 담요와 함께 개를 남겨놓고 우리는 강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낚시를 했다.
하루는 개가 혼자 있기 외로웠던 나머지 몇 번인가 어서 나오라고 조르는 소리를 냈다. 아빠와 나는 낚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고요한 강 저편에서 별안간 첨벙첨벙 소리가 들렸다. 개가 강물로 뛰어들어 우리에게로 헤엄쳐오고 있었던 것이다. 제법 센 물결에 거의 휩쓸려갈 뻔한 녀석을 겨우 안아 올렸을 때, 개는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도감과 성취감이 뒤섞인 그 얼굴을 나는 한참 어루만져주었다. 물론 다시 뭍으로 나갈 때는 안긴 채로도 다리가 물에 닿을까 벌벌 떨었지만, 스스로 헤엄쳐올 때 녀석의 그 결연한 표정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너무나 정확히 아는 자의 얼굴이었다.
사랑받기 위해서, 함께 있기 위해서, 두려움을 감수하고 있는 힘껏 용기를 내는 것. 이 간단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사랑법을 오늘도 동물에게서 배운다.
- 시사인 반려인의 오후 연재, 2022년 8월, 7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