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사람, 감응의 건축가 (2011)




어느 건축가가 시골의 면사무소 설계를 맡았다. 그런데 그는 설계도면은 그리지 않고 동네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일일이 물어보고 다니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대답했다.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 어르신들이 목욕을 하려면 봉고차를 빌려 타고 도시까지 나가야 했던 것이다. 건축가는 생각했다. 주민 자치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이라고. 그래서 그는 면사무소 건물 안에다 정말로 목욕탕을 지었다고 한다.

지난 3월 별세한 건축가 정기용에 관한 짧은 에피소드다.

말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듣는 데 능숙한 사람이 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장단점을 갖고 있게 마련이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사람을 만나면 나중에 반드시 마음에 남게 된다. 잘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은 생각만큼 흔치가 않기 때문이다.

정기용은, 정말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공간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던 사람. 건축 자체보다는 일상적 환경에 더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 건축에 별다른 조예도 관심도 없던 내가 뒤늦게 그의 작업들에 빠져든 것도, 삶의 내용을 새겨들음으로써 삶의 형태를 표현해낸 보기 드문 건축가의 존재가 마음을 두드려서다.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사람.' 이것이 정기용이 내린 건축가의 정의다. 하지만 오늘날, '건축은 부동산이 아니라 문화'라는 그 자명한 사실조차 피부로 느끼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삶의 전망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꾸준히 활동했던 한 건축가의 행보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적지 않다.

안타깝게도 암 투병 끝에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고인의 건축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집이 최근 발간되었다. 『정기용 건축 작품집 : 1986년부터 2010년까지』(현실문화 펴냄)는 주요 작업 39개를 선별해 건축 활동 25년의 자취를 망라하고 있다.

계원조형예술대학, 효자동 사랑방, 동숭동 무애빌딩, 파주 은하출판사, 봉하 마을 노무현 대통령 사저 등, 정기용은 다양한 종류의 건축물을 설계했다. 하지만 특별히 오랜 시간과 애정을 쏟은 것은 공공 프로젝트들이었다. 2003년부터 7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펼친 어린이 도서관 만들기 운동에서 그는 하나의 목표를 놓지 않았다. 바로 훈육의 공간이 아니라 상상의 공간을 어린이에게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행운이면서 동시에 고난의 행군"이었다고 회상한 무주 프로젝트 역시, 10여 년에 걸쳐 진행된 공공 건축 프로젝트였다. 면사무소에서부터 납골당까지 30여 개의 건축을 다루면서, 그는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질문을 던지는 일은, 잘 듣는 일과 더불어 정기용 건축의 출발점이다. 거창하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이 아니다. 심지어는 건축적인 질문도 아니다. 그저 이런 식이다. 곤충박물관을 지을 때는 '곤충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어린이 도서관을 지을 때는 '왜 어린이가 중요한가?'를 묻고, 강남에 아트센터를 지을 때는 '강남이란 대체 어떤 땅인가?'를 먼저 묻는 것. 이러한 근원적 질문은, 답을 구하기 위해 공간과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씨앗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보다 깊은 건축적 사유로 현실 공간에 뿌리를 내린다.

그러고는 또 다른 질문들을 만든다. 내면을 가진 집을 만들기 위해서 주거 공간의 구조는 어떠해야 하는가? 한국의 근대사는 죽음과 학살의 역사인데, 집단의 죽음을 제대로 기억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에서 개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납골당은 무슨 의미를 띠는가? 마을 사람들의 사회관계를 창건하는 장소로 건축을 하는 일은 과연 가능한가?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는 과정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가 남긴 질문들을 나도 모르게 함께 고민해 보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건축 작품집을 보며 흔히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아닐 것이다.

이 작품집이 여느 건축 도록과는 다른 접근 방식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디자인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육중한 몸집과 과장된 디자인, 불친절한 도판과 난해한 내용이 특징이었던 기존의 건축 도록은, 사실 범람하는 현대 건축물의 외양을 그대로 닮은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 책은 실용적인 단행본 판형을 도입하고 불필요한 장식을 제거해, 단순하고 간결한 정기용 건축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한편, 풍부한 스케치, 다양한 도면과 사진 자료에다, 그의 건축 철학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인터뷰, 그리고 동시대 건축가들의 좌담 녹취록까지 함께 수록되어 있으니, 내용은 충실하기 그지없다.

지난 겨울 그의 건축 세계를 조망하는 《감응》전을 연 일민미술관 관장 김태령은 정기용의 건축물을 '스토리텔러'에 비유한 바 있다. 구석구석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그를 '생태 건축가'라고도 불렀다. 언제나 땅을 존중했고 그곳에 깃들어 사는 생명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건축계의 공익 요원'이라는 재밌는 별명도 있었다. 용산 기지 반환 운동, 문화 헌장 제정 등, 일만 생기면 늘 앞장서서 행동했기 때문이다. 정기용은 건축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건축가이기도 했다. 소위 '작가병'에 걸리는 것도, 부동산 시대의 '건설 하수인'이 되는 것도, 껍데기 같은 현대 건축이 낳은 폐단으로 여겼다. 그런 그에게 건축 행위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실천이나 공동체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었을 것이다.

"사유지 안에 세워지는 건축은 동시에 지구 위에 구축되는 건축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건축은 그 태생이 공공적이다. 우리가 건축을 그토록 윤리적 범주 안에 넣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며 건축을 개인의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윤리적 실천으로 다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기용)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1970년대 후반 귀국한 정기용.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새마을운동이 전 국토에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근대화의 풍경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에세이들을 읽다 보면 '근대화가 배제한 것'에 관한 지속적인 고민이 감지된다. "사람과 삶 없이는 건축도 도시도 없다"는 이 건축가의 주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효한 진실이건만, 그 후로도 삶의 터전을 갈아엎고 무작정 지어 올리는 방식의 도시 개발은 쉼 없이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천박한 자본주의의 풍경은 계속되고 있다.

개발의 미명 하에 사람을 사지로 내모는 일은 도시 곳곳에서 벌어진다. 용산 참사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홍익대학교 인근 칼국수 집 두리반이 철거에 맞서 싸워야 했고,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모은 연대의 힘으로 두리반은 531일 만에 눈물겨운 승리를 얻었지만, 그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또 다른 폭력의 현장들을 목격하고 있다.

명동 재개발 구역의 마리 카페를 지키기 위해 모여든 학생과 시민들이 용역 깡패의 불법 폭력에 맨몸으로 맞서야 했던 밤. 화재로 폐허가 된 포이동에서 주민들이 어렵게 지은 경로당을 강남구청이 발 벗고 나서서 때려 부수던 새벽. 모두가 바로 지금 우리를 둘러싼 시간들, 현재 진행형의 사건들이다.

포이동 재건 마을은 박정희 정권이 거리를 미화한다는 명분으로 도시 빈민을 한 곳에 수용했다가, 전두환 정권이 이들을 다시 강제 이주시킨 동네라고 한다. 그렇게 핍박받던 이들이 30년 넘게 삶의 터전으로 겨우 일구어 온 공간을, 이 정권 역시 가만히 두려 하지 않는다. 타워팰리스가 지척에 있는 금싸라기 땅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상계동에서 노원구청이 그랬던 것처럼, 강남구청은 용역 깡패와 손을 잡고 포이동 거주민들을 몰아내려 하고 있다. 국가의 폭력은 마치 데자뷔처럼 반복된다.

제주 4·3 평화 공원의 설계를 계획했던 정기용은, 세상에서 가장 무지막지한 폭력이 국가의 폭력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4·3 사건은 당시 공권력에 의해 엄청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지만 아직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고, 제주도민에게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런데 지금 해군 기지 건설을 저지하고 있는 제주도 강정 마을에서는 덤프트럭과 굴착기 그리고 살벌한 공안 탄압 분위기가 이중의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문화재와 청정 해역의 자연은 이미 국가의 안중에 없고, 주민들은 자신들이 함께 살아온 땅 문제를 놓고 반으로 갈라져 싸우게 되었다. 삶의 터를 지키려는 죄 없는 사람들이 오늘밤에도 불안한 잠을 자야만 하는 현실.

땅에 얽힌 사람들의 기억, 고향과 집을 둘러싼 오늘의 기억들이 왜 이렇게도 황폐해야 하는 것일까? 시멘트를 들이붓는 것으로 정신적 허기를 메우는 시대는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일까? 세계화와 국격, 국가 안보라는 실체 없는 명분이 공간에 내재한 질서를 파괴하고 삶을 질식시키는 시대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름의 방식으로 나이테를 새겨 온 땅, 그 땅에 삶을 꾸려온 사람들을 무작정 내쫓는 폭력의 시간을, 이제는 그만 끝냈으면 좋겠다.

정기용이 듣고 있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잘못된 역사를 기억하는 노력 없이는, 공간과의 진정한 교감 없이는, 사람과 사람의 '고통의 연대' 없이는, 그러한 바람이 순진한 희망사항으로 그칠 거라고 말이다. 집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생활 교육자이기도 했던 정기용. 아마 그래서일 거다. 그의 조용한 자취가 이렇게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우리에게도 어떤 질문의 순간이 발생하기 때문일 거다. 그의 건축적 실천을 우리는 지금 각자 어떤 방식으로 나눠 이어갈 수 있을까? 어제를, 오늘을, 어떻게 더 잘 기억할 수 있을까? 지금 여기의 철학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러나 정기용은 건축가로서 완성된 철학을 가지고 공간 현실에 접근하지는 않았다. 그는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결코 사전에 예측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공간을 마주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느끼고 전달되는 감정, 그 상호 쌍방적 관계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건축의 이미지나 형상이 얼굴을 들었고, 그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정기용은 '감응'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열매에서 싹이 나와 생명이 자라는 일,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일, 넌덜머리 나는 상황에서 타인의 고통이 내 것처럼 다가오는 일, 모두가 감응의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찰나의 발견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 속에서 마련되는 작은 역사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바로 그 작은 역사의 모음들이 필요한 게 아닐까? 엄연한 삶의 공간을 무분별한 개발 논리와 폭력으로 지우려는 자들에게 감응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이런 믿음을 가져 본다. 더 많이 질문하는 사람, 더 귀 기울여 듣고, 더 잘 기억하는 사람이, 오래 간다고. 결국은, 이길 거라고.




- 프레시안 books 2011년 09월 02일, 『정기용 건축 작품집 : 1986년~2010년』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