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적이 있다
: 이민휘 1집 앨범 《빌린 입》에 부쳐 (2016)




높은 산을 오르다 폭우를 만난 적이 있다. 팬티까지 흠씬 젖었고, 신발은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집스런 몇몇 등산객들과 함께 무사히 정상까지 올라갔다. 후회하기 시작한 것은 하산 길에서였다. 산에서 내려가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힘들지만 괜찮은 경험이었다고, 조금만 더 힘내자고 격려를 나누기도 했다. 위험한 능선을 지나 지루한 내리막에 접어들자 발밑의 진창이 몇 배로 성가셔졌다. 말수가 줄어들더니 이내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고개를 떨어트린 채 무거운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빗줄기가 점점 거칠어졌다. 그러나 빗줄기가 아니라 침묵 때문에 질식할 것 같았다. 패잔병들처럼, 그 비참한 침묵만을 공유한 채로 한참을 더 가야 했다.

길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산기슭에 붙박인 나무들이 머리채를 흔들며 비에 두들겨 맞고 있었다. 사위가 어둑해져, 앞서가는 이들의 실루엣이 유령처럼 보일 때까지 걸었다. 걸으면서, 차츰 나는 사람들 사이에 전염된 그 지긋지긋한 슬픔의 정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산에 올라갈 때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지만 내려갈 때는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언어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도시의 불빛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비가 잦아든 검은 하늘 아래 거대한 산이 입을 다물고 서 있었다. 평지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등을 돌린 채 뿔뿔이 흩어졌다. 아무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위로의 눈빛조차 건네지 않았다. 위로라니. 누가 누구를 위로한단 말인가?

혀가 잘리는 공포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주로 좌절을 느낄 때였다. 삶의 의미가 설명되지 않을 때, 혹은 타인과의 대화가 헛되이 여겨질 때. 그럴 때 나의 상상은 어떻게 전개되든 늘 혀가 잘려 나가는 장면으로 귀결되곤 했다. 오염된 말의 세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냉소와 절망, 그 속에서 여전히 언어에 기대고 언어에 잠식당하는 스스로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던 것 같다. 헛된 공상 속에서 벌받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속한 어리석은 종에 대한 원망과 연민과 죄의식을, 불쌍하게도 모조리 혀에게 부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맛을 느끼고 소리를 내는 신체 기관에 불과한 그 작고 둥근 살덩어리에게. 악몽을 꾸지 않는 방법은 현실 속의 나에게 자꾸 말을 거는 것뿐이었다. 혀로 혀를 더듬어, 아직 그 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2년 전 겨울, 나는 그녀가 우는 걸 본 적이 있다. 이 앨범의 네 번째 트랙 '부은 발'을 그날 처음 들어보았다. 이민휘는 뉴욕으로 떠나기 며칠 전 친구들과 모여 앉은 조그만 실비집에서 무반주로, 아니 약간의 취기를 반주 삼아 그 노래를 불렀었다.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는 바람에 노래는 중단되었지만, 이후에도 토막 난 멜로디와 노랫말은 나의 뇌리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조심하렴’으로 시작하는 후렴구가, 잊을 만하면 불현듯 되살아나 혀끝을 맴돌았다. 책을 읽다가, 화장실에서, 대형마트 에스컬레이터에서, 죽은 아이들 영정에 국화를 놓기 위해 늘어선 행렬 속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린 하산길에서.

도시의 풍경은 매일매일 낯빛을 바꾸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인파로 가득 찬 지하철이다. 차가운 손잡이에 매달려 있노라면 시커먼 유리창에 휘청거리는 내 모습이 비친다. 각자 몫의 슬픔으로 말이 없는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지난 몇 주간 출퇴근길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이민휘의 노래들을 들었다. 이따금 그날의 눈물이 무슨 의미였을까 생각해 보곤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도 한동안 악몽을 꾸었던 것 같다. 혀를 도둑맞고, 빌리고, 그것으로 기어이 노래하는 아름답고 쓸쓸한 꿈을. 타인의 악몽이 위로가 된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행복이 그렇듯이 슬픔도 삶의 어디쯤에선가 빌려온 것이라면,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때까지 고이 간직할 수밖에 없다. 혀끝에 올려놓고, 오래오래 더듬을 수밖에 없다.





- 이민휘 1집 《빌린 입》(2016) 부클릿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