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없음 (2024)



남쪽 섬에서 모처럼 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누적된 피로 탓에, 입이 꺼끌하고 무얼 먹어도 그리 맛있지 않았다. 그래선지 매일 빵 생각이 났다. 버스를 타고 읍내를 지날 때 눈여겨봐 둔 작은 빵집이 있어 산책할 겸 가보기로 했다. 빵집에 도착했는데 이럴 수가. "오늘 준비한 빵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라는 팻말이 유리문에 붙어있었다. 시간이 오후 세 시밖에 안 됐는데. 이튿날 조금 더 일찍 갔다. 오후 한 시. 그러나 어김없이 빵은 없었다. 다음날에는 정오 무렵 도착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듣자 하니 오전 아홉 시에 가게 문을 열면 두어 시간 내에 빵이 다 팔리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내 기억저장소에 보관된 첫 번째 빵은 찐빵이다. 다섯 살이었는지 여섯 살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빵을 먹은 게 한밤중이었다는 건 기억난다.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림을 시작한 아빠는 그즈음 벌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고, 늦은 밤 귀가할 때면 맛있는 것을 사 오곤 했다. 나와 오빠는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며 아빠가 사 온 음식을 이불 위에서 먹었다. 나무를 종이처럼 얇게 켜서 만든 곽에 두 줄로 담긴 군만두, 면마다 다른 색깔의 설탕이 묻은 각사탕, 김 가루와 땅콩 조각이 화석처럼 박혀있던 센베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갖가지 과자 따위였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어린 시절 기억 속 먹거리 페이지를 완전히 장악해 버리게 될 음식이 이불 위에 모습을 나타낸다. 찐빵. 두꺼운 종이 곽에 담겨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던 찐빵은 구름처럼 뽀얗고, 불처럼 뜨겁고, 아늑하면서도 슬픈 맛이 났다. 찐빵이라 하면 보통 앙꼬 넣은 빵을 찜통에 쪄낸 것을 말하고, 간혹 그것을 자작한 팥물에 찍어 먹곤 하는데, 이 찐빵은 특이하게도 국처럼 깊고 뜨거운 팥물에 찐빵이 푹 잠겨 있는 수준이었다. 찐빵계의 부먹이랄까. 아무튼 곁들여진 팥물도, 속에 든 앙꼬도, 아낌없이 넉넉했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란 대개 엉망진창이다. 인과관계가 맞지 않거나, 조악하게 구성된 콜라주 같다. 하지만 그 찐빵에 대한 기억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가 어린아이에서 청소년이 될 때까지 간헐적으로 사 먹은 것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낡은 건물에서 지금까지도 팔고 있으니까. 그 가게 이름은 수복찐빵이다. 가끔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수복찐빵 사장님은 가게 확장에도, 요즘 지역 상인들 다 하는 전국 택배 배송에도 관심이 없으신 듯하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간 관광객들은 빵이 다 소진되어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열아홉 살 겨울에 서울로 올라온 후, 나는 겨울만 되면 그 찐빵이 그리웠다. 하지만 시간은 빠른 속도로 사람을 적응시킨다. 골목 하나마다 편의점이 하나씩 있는 대도시에 살다 보니, 이제 둥근 전열기 안에 진열된 호빵과 쌓은 기억이 수복찐빵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천오백 원이면 사 먹을 수 있는 대기업 호빵은 수복찐빵의 맛을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언제든 진열대가 비면 편의점 직원이 창고에서 호빵 상자의 비닐을 뜯어 채워 넣어주는 간편함을 지녔다.

나는 이따금 서울 사람들에게 수복찐빵의 맛을 설명해 보려고 노력했다. 설명하면 할수록 나의 묘사는 수복찐빵의 맛으로부터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특별한 맛이라고 할 수도 없고, 더 먹고 싶은 다른 음식이 많이 존재하긴 하지만, 몸이나 마음이 아프면 희미하게 생각이 나고, 언제라도 먹고 싶을 때 찾아가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는, 그런 맛이라고. 그러고서 몇 초 후 나는 생각했다. 그거 혹시... 고향 아닐까? 내가 한 번도 내 것이라 여겨본 적 없고, 그래서 돌아갈 곳으로 상정해 둔 적 없는 고향, 상상 속에서만 아름다운 그 장소를 나는 찐빵 속에 고이 간직해둔 게 아닐까?

어느 날 한 서울 친구가 나의 고향으로 출장을 간다고 했다. 나는 시간이 나면 꼭 수복찐빵에 들러서 맛을 보라고 일렀다. 이튿날 그가 메시지로 보내온 사진에는 낯익은 수복찐빵의 외관이 보였다. 굳게 닫힌 셔터에 "빵 없음“이라고 적힌 A4 종이가 붙어있었다. 아아, 무심한 그 세 글자. 빵 없음이라니.

누군가는 빵집이 너무 유명해지면 생기는 현상 아닌가 생각할 것이다. 망원동이나 이태원에 가면 새로 생긴 핫한 가게 앞에 웨이팅이 몇 줄로 늘어서 있는 광경을 자주 본다. 몇 주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것도 많아진 세상이다. 그러나 이런 호들갑의 세계는 '빵 없음'의 세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빵집은 재료를 준비한 만큼만 팔 수 있고, 적당히 준비했다면 가진 것이 소진되는 순간 셔터를 내릴 수밖에 없다. 그건 빵이 자본주의의 동무여서가 아니라, 시간의 동무여서다. 반죽 되고 발효될 시간이, 천천히 부풀어 오르고 향과 풍미를 품을 시간이 빵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추억이 인스턴트로 만들어질 수는 없듯이 말이다.

이제 찐빵이라는 단어를 어디선가 읽어도 예전만큼 아련한 마음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고향을 거의 잃었다. 슬프지만, 신나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내가 아직 이름도 모르는 도시와 마을들이 있고, 그곳의 골목 어딘가에는 새로운 추억을 천천히 발효시켜줄 빵집이 숨어 있다. 세상의 모든 없는 빵들, 없어질 빵들, 없어질 빵을 매일매일 굽는 사람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내일은 오전 여덟 시 오십 분에 숙소를 나서봐야겠다.





- 나선도서관이 제안하는 [빵집x도서관]의 일환으로 쓴 글입니다.